상영작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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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잎> : 영화를 예매하셨나요? 정물화를 보여드리겠습니다!

By 정소희

  8K, AI 활용, OTT 콘텐츠의 부상에도 무심하게 독자적인 영토를 구축한 감독의 목록에서 알렉상드르 코베리제의 이름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정정한다. 그는 목록에서 가장 극단적인 영역에 위치할 것이다. 어떻게? 이라클리가 빛과 그림자의 틈에서 딸 리자의 행적을 쫓는 <마른 잎>으로.

 

 

  <마른 잎>은 감독의 전작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2021)를 놓고 보면 이질적이지 않다. 우선 토픽-특히 마른 잎-을 찾아 분주히 패닝하는 카메라워킹이 반갑다. 사소한 차이점이라면 변신 모티프를 재차 기용하고 있지만 형태변환자가 아닌 투명인간이라는 것 정도. 시의적절하게 주인공 이라크리에게 딸 리자의 편지를 전해줄 낯선 사람, 이라크리에게 낮 저녁 밤에 각각 이정표가 될 사물 등 설화적 요소를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도심보다는 산과 한적한 마을을 배경으로 삼기에 전작에서 공간과 인물의 레이어를 쌓아 올렸던 프레임인프레임같은 배치, 시차가 있는 소리의 간섭 등의 구성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코베리제 감독은 전작에서 ‘안’ 보여주거나 ‘덜’ 보여줬던 것에서 나아가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착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래된 캠코더 촬영본 혹은 스마트TV로 재생된 780p 영상처럼 각진 화소가 두드러지는 상영본을 통해서. 09년형 소니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된 <마른 잎>은 뭉개지는 픽셀, 자연광과 역광을 조합해 아득한 비가시영역을 조합한다. 그가 활용한 촬영 장비가 덜 충분함을 넘어 매우 불충분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충분해 보인다. 불분명해진 화면에서 관객은 쉽게 사물과 인물을 혼동하고, 대화상대의 존재 여부를 착각하고, 레빈을 필두로 대화상대들이 ‘리자가 여기에 왔었냐.’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목소리만 남고 형체는 사라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기에. 감독은 보이는 사실보다는 있었다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취급하므로 사람, 사건, 증언 중에서 사람이 증발해도 영화는 성립한다. 

 

 

  초고화질 영상 시대에 역행하는 화면은 주저하지 않고 한번 더 과거로 역행해 관객에게 정물화 세 점을 제시한다. 각각 <식칼이 있는 사과 바구니>, <테이블 위 살구와 씨앗>, <포도 없는 포도밭> 정도로 명명할 수 있을 테고 물리적 스크린 외부를 액자 삼아 부재와 존재를 동시에 실현한다. 사과 그림에서는 사과와 입이 함께 나타나지 않지만,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의 틀을 규정하는 문화 규범이 존재한다. 나무 테이블 위 살구 씨앗과 살구는 존재의 시작과 끝을, 포도와 포도주는 부재함에도 원료와 생성물의 관계를 가시화한다. 이 과일 그림들은 화분(그림자), 이라크리의 여정에서 계속해 클로즈업되는 낙엽 및 나무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마른 잎>에서 씨앗-꽃-나무-과실-낙엽’ 일련의 생장 과정은 분리되거나 중첩돼 등장하는데 과일을 특정 시기의 ‘절정’으로 받아들인다면 마른 잎이 여정의 ‘마무리’가 되리란 걸 알 수 있다. 세 과일의 수확철 또한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있는데 극 중 명확하지 않은 계절감각과 궤를 함께 한다.

 

 

  영화는 눈부심과 어둑함을 안료 삼아 모호하게 그려진다. 그렇기에 영화의 축을 보고자 한다면 이라크리가 아이들의 요청에 따라 다시 세운 골대보다 더 먼 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가 강의실에서 그었다 지운 선 뒤에서 일렁이던 빛을 향해. 이라크리가 강의실 칠판에 그렸다 지운 선은 극 중 그가 거쳐 간 길이 되고 나뭇잎의 잎맥이 되고 리자의 소포 겉봉에 그인 선과 겹치게 되는데, 이 선을 동시에 전사하면 나뭇잎의 잎맥처럼 보일 것이다. 이라크리가 마땅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공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던 에피소드들은 그가 강의실에서 선 주위에 그렸던 원처럼 원심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감독은 정작 타인에게는 이유를 정확히 묘사하기 어렵지만 소중한 존재들이 표백되지 않도록 선명하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방식을 차용한다. 관객은 모두 안다. 나뭇잎을 말려 추억을 박제할 수 있다.

 

 

  상영관의 조명이 켜지고 일어서서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순간, 한없는 실망감이 손목을 타고 오른다. <마른 > 실망했기 때문이 아니다. 카메라의 성능, 장소의 미추와 상관없이 오로지 자연광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경험이 끝나서다. 블루레이, DVD, OTT 없이 간혹 장면을 상상하기만 해야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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