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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평론단 - 비전

<철들 무렵> :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블랙코미디 속에 휩쓸리기

By 김예은

 한국이라는 국가 특성상 가족이라는 존재는 한없이 불편하다. 그러다보니 가족을 주제로 한 극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철들 무렵>의 프로그램 노트를 본 순간, 두려움이 머릿속을 스쳤다. 두 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나는 꼼짝없이 어두운 공간에 갇혀 두 시간 동안 고통받아야 하는 것인가? 어쩌면 이러한 생각조차도 철들지 않은, 미숙한 생각일 수 있다. 과연 영화 <철들 무렵>은 관객들에게 불편감을 한가득 안겨줄 것인가? 아니면 위트와 유머로 해학적인 블랙코미디를 펼칠 것인가?

 

 <철들 무렵>에는 여러 세대가 나온다. 부양이 필요한 구순 노인 옥남(원미원), 연세대를 나왔지만 막노동을 전전하는 철택(기주봉), 엄마 옥남을 강제적으로 부양하게 생긴 현숙(양말복), 배우지망생 정미(하윤경), 철택의 조카손자 동민(김하원)까지. 다양한 세대로 구성된 대가족을 아우르기라도 하듯 옥남의 담담한 내레이션은 한국의 역사적 사건을 읊음으로써 각 세대가 겪은 일들이 무척이나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든다. 세대 격차도 크나큰 산인데, 가족에게 닥친 사건은 더더욱 험준하다. 오 남매는 현숙이 혼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양을 전가하려 하고, 철택은 암을 판정받는다. 철택과 현숙은 사실상 이혼 상태이기에 딸 정미는 생업을 이어가며 철택을 간병한다. 절박한 상황인데, 여기서는 나이만 먹었지, 다들 철딱서니가 없다. 실상 여기까지만 봐도 영화관에서 달아나고 싶을 정도로 두려운 하이퍼리얼리즘이다.

 

 그러나 관객은 달아나지 않고 웃고 있을 것이다. 세대 갈등, 복잡한 가족 관계, 가족에게 불어닥친 사건. 층층이 쌓인 상황 위로 해학적인 유머가 휘몰아친다. 주거니 받거니, 불편한 갈등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배우들의 연기는 덤이다. 주연에서 조연까지, 훌륭한 연기는 입꼬리를 씰룩거리게 만든다. 정곡을 찌르는 시나리오에 대한 원망은 어느새인가 씻은 듯이 사라져 있다. 분명 몰아치는 듯 유머도, 연기도 쉴 새가 없는데 호흡은 여유롭다. 완숙한 연출에서 오는 여유는 관객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그뿐일까. 유머와 연기가 펼쳐질 자유도 부여해 준다. 이 수많은 주제를 아우르는 포용도 오는 듯하다.

 

 영화 <철들 무렵>은 고통 하나 없이 가족 블랙코미디를 보여준다. 쉴 새 없이 웃게 된다. 내가 철이 들지 않아서 웃었다기엔, 함께 웃었던 관객들의 웃음 중에는 중후한 것이 섞여 있었다. 세대를 아우르는 힘은 영화 속에서만 그치지 않는 듯하다. 장편 연출이 두 번째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한 감독의 재간에 당해낼 도리는 없다. 휘몰아치는 블랙코미디에 휩쓸려, 해학이라는 바다에 허우적대고 싶은 관객이라면 반드시 이 영화를 관람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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