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제 3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고대하며, 한정된 시간과 기회안에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했다. 평소라면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잘 상영하지 않는 독립 영화나, 흔히 접하지 못하는 외국 영화를 선택했겠지만 이번에는 더 색다른 객기를 부리고 싶었다. 영화의 전당 중국장에서 오전 9시 영화를 보고 센텀시티역으로 걸어가며 다음날 영화의 잔여석을 무한 새로고침하던 중, 강력한 인상의 영화 제목을 발견했다. 얼핏 공포영화나 스릴러 장르의 영화 제목 같기도 한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인 김우창 선생님의 인생을 21년에 걸쳐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김우창 선생의 제자이기도 한 최정단 감독은, 김우창 선생의 강연 아카이빙을 목적으로 촬영을 시작하였으나 더 많은 사람들이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며 사유할 수 있도록 영화 회사까지 설립했다고 한다. 인문학도로서 부끄럽게도 김우창 선생님의 삶이나 강연을 접한 적이 없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삶을 관조하고 선생의 생각을 엿보면서 그간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 덮인 겨울에 백발의 한 노인이 가파른 계단 위에 있는 현관문에서 한쪽 머리가 잔뜩 눌린 채 나온다. 어딘가 엉성해 보이는 몸짓으로 찬찬히 계단과 손잡이에 있는 눈을 쓸고, 눈에 잔뜩 눌린 나무를 요리조리 피해 조간 신문을 가지고 와 하루의 일상을 시작한다. 이러한 그의 일상은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도, 꽃봉우리가 트이는 봄에도, 담쟁이덩굴로 뒤덮이는 여름에도 묵묵히 그리고 조용히 반복된다. 감독은 그간 대중이 몰랐던 김우창 선생의 20년 간의 세월과 그의 활동들을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큰 부분까지 담백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다.
평창동 꼭대기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드디어 들어갈 수 있는 현관 속 내부는, 김우창 선생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다. 본인의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소매가 해진 50년 된 양복, 아버지 집에서 사용하던-지금은 김우창 선생의 반려묘들의 스크래쳐가 된- 오래된 천 소파, 천장에 물이 새 곰팡이가 잔뜩 핀 부엌 천장 등이 말이다. 궂은 날씨에서도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행사 현장에서, 강의실에서 쓰러질지언정 본인이 한 말과 약속은 우직하게 지치는 선생의 모습을 보며 그가 어떠한 자세로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다. 영화 중간 중간 선생의 책 속 문구가 나오는데, 그 문장과 연이어 이어지는 선생의 삶의 모습은 그는 본인이 생각하고 적은 글처럼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만연하게 들었다.
영화의 후반부 다시 영화의 첫 시작처럼 40년 된 평창동 집이 눈으로 뒤쌓였다. 약 2시간 간 그의 지난 세월을 엿봤기 때문일까. 왠지 선생의 얼굴이 더욱 수척해 보이고, 관자놀이의 검버섯은 더 크기를 키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자신이 약속하고 계획한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해내던 그도, ‘이제 글을 쓰기 어려워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글쓰기를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하루의 일상을 보내며, 마치 자신이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듯이 껌껌한 방에서 오래된 데스크톱 컴퓨터로 원고를 작성하는 선생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영화는 비록 끝이 났지만 선생의 삶에 대한 자세와 생각은 긴 여운을 남긴다.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김우창 선생과 그의 영원한 동반자 설순봉 선생의 무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