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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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그대 살아 서성거리는 이들이여, 오라

By 정소희

  뱀파이어는 호러·오컬트 장르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발휘면서도 지난 100년간 숱하게 재현돼 진부해진 존재다. 흡혈귀 창작물의 과밀한 지층에 루마니아인 라두 주데 감독이 더한 < 드라큘라>(2025)는 뱀파이어 관련 역사, 문화, 정치, 성 등 모든 주제를 횡단하고 전복하는 피카레스크 선집이다.  

 

  영화는 의도된 저속함, 음란성, 경박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아마추어적인 저급한 방식 그 자체가 목표일까? 감독은 ‘영양과잉’ 에피소드에서 차우셰스쿠 집권기의 루마니아 청소년 병원이 전신인 회춘 클리닉을 배경으로 코믹한 점프컷 활주와 “처형만 안 당했어도 살아있었을 걸.”이라는 대사로 권력자의 탐욕으로 인한 비극을 환기한다. 진지하게 강대국의 포로 고문과 침략을 옹호하며 진짜로 뱀파이어 쇼의 배우를 사냥하는 데 열광하는 뱀파이어 클럽의 참석자들은 웨이스트 숏으로 촬영된 인터뷰 쇼트와 질주하는 역동적인 롱 숏을 번갈아 사용해 행위의 극단성과 부조리함이 선명히 드러나도록 연출됐다. 이 지점에서 비속어, 구강성교, 나체, 침, 피 등의 요소는 풍자를 윤활한다. 

  이런 극단적 상업적 요소를 토대로 감독은 영화의 형식 자체를 사람의 현대 미디어에 대한 즉각적인 자극-반응 메커니즘과 같은 방식으로 설계하고 있다. 오프닝 시퀀스는 “나는 블라드 대공이다. 내 성기나 빨아라!”라는 대사를 외치는 조악한 16개의 AI 생성 쇼트들로 구성되며, 도발적인 톤을 수립한다. 다만 3시간 동안 이어지는 유사한 AI 생성물이 관객들에게 피로감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지루함은 전략의 실패라기보다 전략적 지루함이다. 은밀하지 않고 효과적인 영역에 속한.  

 

  <드라큘라>는 다양한 표현 기법으로 현대에 이르러 수없이 파생된 뱀파이어라는 존재의 혼란과 과잉을 표현한다. 얼핏 보면 연관성이 떨어지는 소재의 부조화한 조합은 장 구성, 촬영 기법에서도 발견된다. 감독은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부조화하게 엮어 뱀파이어의 현대적 문맥을 탐구한다. 모든 에피소드가 닥터 주덱스 0.0의 알고리즘의 오류나 과장으로 민망하게 끝나고 연관성이 낮아 보인다. 이 허술하고 느슨한 연결은 주제에 대한 낮은 관심이 아니라 뱀파이어라는 괴물의 연혁을 빼놓지 않고 저급한 아마추어적 톤으로 고하기 위해서다. 특히 동명의 루마니아 연애 소설을 각색한 ‘그냥 그렇게’를 여성 블라드 대공의 ‘귀환’과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992) 의 패러디 버전 ‘흡혈귀’ 사이에 삽입됐다. 이런 일련의 방법들은 아직 뱀파이어로 명명받지 못하고 피와 시체를 탐하던 으스스한 괴물을 연결한다. 일련의 과정은 뱀파이어 개념을 해체하고 속성을 추출해 의도적으로 재조합하고 전복하기 위한 비상구로 볼 수 있다.  

  감독은 AI를 “다른 모든 도구와 마찬가지로 영화 제작의 도구”로 간주하고 “영화는 처음부터 기존 기술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영화는 아이폰 15로 심야의 추격장면을 촬영하고, AI로는 추락 장면 촬영이나 원경의 자연경관, 살수차 사용, 게티 이미지 사용을 대신한다. 뱀파이어 틱톡과 같은 SNS를 차용하는 한편, 엑스트라 대신 종이 패널을 배치하고 싸구려 가면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제작 방식과 소품을 혼용한다. 이는 시체를 탐하는 괴물이 십자군 전쟁과 페스트를 거친 다음 과학 대중화의 직격탄을 맞고 ‘드라큘라’로 탄생했다가, 20~21세기에 이르러 원형에서 멀어지지만 개념을 유지하는 일련의 과정과 닮았다. 

 

  라두 주데의 <드라큘라>에서는 인간을 수세에 모는 프레임의 폐쇄성이나 무력감을 강조하는 프레임의 확장 같은 공포영화의 기법이 주요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극 중 근대의 주인공이 중세의 캐릭터와 연애하고 현대 도시로 이어지는 다리를 아무렇지 않게 오갔듯 관객도 이질적인 차원, 대상과의 충돌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존의 질서에서 빗겨난 불편함은 쉽게 경계를 넘기 어려워 서성거리는 인간에게 담장을 넘을 작은 최면을 걸기 위한 거슬리는 속삭임이다. 그러므로 만약 모든 것이 지나치게 살아있는 것 같다면 멈췄던 것이 살아나며 퍼진 영화적 전염병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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