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정체 모를 소리가 커지고 30초 이상 암전을 거친 후에야 영화 <리드랜드>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는 원경과 근경을 오가며 네덜란드의 광활한 갈대밭을 담는다. 키 큰 갈대 사이를 헤치며 한 사내가 절제된 동작으로 갈대를 베는 영화의 도입부는 시각적으로 무척 안정적이고 아름답다. 네덜란드 출신 화가 고흐의 그림 ‘수확하는 농부’가 떠오르기도 하고, 고흐가 닮고 싶어 했던 밀레의 그림 ‘저녁종’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이미지의 유사성만으로 예상했던 평온은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영화는 줄곧,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고흐의 내면처럼 흔들리고, x선 촬영 결과 밝혀진 ‘만종’의 숨은 그림-죽은 아이의 관-처럼 죽음의 비밀이 도사리고 있다.
갈대밭을 임대해 갈대 농사를 짓고 그 줄기를 잘 가공해 지붕의 재료로 판매하는 요한은 숙련된 갈대 기술자로서 자부심이 크다. 젊은 딸을 둔 홀아비인 그는 얼마 전부터 손녀 다나를 돌보고 있다. 값싼 중국산 갈대의 수입, 난민 유입, 건초 수확기 사용 등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그는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일터이자 자부심의 근원인 갈대밭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소녀의 시체를 발견한다. 요한은 트루터로 불리는 건너편 마을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반감으로 그들을 의심하고, 오토바이를 숨겼다는 이유로 이웃 청년을 의심한다. 폐쇄적인 소규모 마을 공동체 속에서 고집스럽게 자기 방식을 지켜온 그가 살인 사건을 적극적으로 파헤침으로써 생겨나는 갈등이 영화의 주된 서사다.
영화에는 요한 말고도 주인공이 더 있다. 바로 ‘갈대’다. 영화 내내 대사를 절제하고 표정 변화 없는 요한을 대신해서 흔들리고, 속삭이고, 울부짖는 것은 갈대다.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 날 밤의 갈대는 온몸으로 뭔가를 말하려는 듯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요한이 인터넷 포르노에 접속한 날 밤 갈대는 한쪽으로 쏠린 채 눕는다. 갈대는 꽃을 피우는 모습으로, 초록의 새잎이 나는 모습으로 영화의 마지막까지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메인 포스터에서 수직 수평의 공간을 꽉 채운 갈대밭을 마주한 요한의 뒷모습에는 왠지 모를 막막함이 느껴진다. 살인의 비밀을 낱낱이 알고 있는 갈대밭은 울부짖기만 할 뿐 정작 그 비밀을 감춘 채 서사의 모호성을 돕는다.
영화가 이미지를 제시하고 분위기를 만드는 방식은 극단적이거나 모호하다. 살해된 소녀의 모습을 담는 카메라는 냉정할 정도로 섬세하다. 평온해 보이는 마을의 일상과는 대비되는 회의 장면과 TV 화면, 트랙터의 위협적인 출현 등은 다양한 갈등의 조짐을 시각화한다. 말, 소, 하마 등 동물이 등장하는 사건들은 인간에 내재한 보편적 폭력성을 잘 보여준다. 붉은 속옷과 붉은 원피스, 하마 가면이 잘릴 때 드러나는 붉은 천 등은 의도적으로 강조된다. 거대 악처럼 단단한 타르 덩어리의 출처는 끝내 밝혀지지 않고, 그것을 대하는 요한의 모순적인 태도만 남는다. 새잎이 난 갈대밭에 물을 대고 돌아가던 요한의 시선이 자전거 탄 여인을 좇는, 영화의 마지막은 그래서 더 모호하고 불안하다. 실제 갈대 기술자였다가 감독의 눈에 띈 주연 배우 게릿 크놉베는, 그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만큼이나 현실감 있는 이미지로 긴장의 양극단을 표현한다.
미스터리, 범죄 영화에서 갈대밭은 새로운 소재가 아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출신 감독 스벤 브레서르는 갈대와 갈대밭을 소재와 배경에 국한하지 않고, 배우처럼 연기하게 하거나 시각적・청각적 미로로 기능하게 한다. 인간의 욕망과 폭력성은 갈대의 미로 속에 몸을 감춘 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도 여전히 미로 속을 떠돌고 있는 관객이라면, 새로운 갈대밭의 발견을 만끽하는 셈이 될 것이다.